창백한 푸른 점 ( Pale Blue Dot )
“창백한 푸른 점 ( Pale Blue Dot )”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기가 바로 이곳입니다. 우리의 집이며, 우리 자신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이 알고 있고, 당신이 들어봤으며,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 자신만만했던 수천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경제체제,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이들이, 모든 영웅과 비겁한 자들이, 모든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들이, 모든 왕과 소작농들이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부모와 희망찬 아이, 발명가, 탐험가, 모든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수퍼스타와 위대한 리더들이, 모든 성자와 죄인들이 우리 역사속의 모든 이들이 태양빛에 떠다니는 저 작은 먼지같은 점 위에 살다 갔습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의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지금껏 수많은 황제와 장군들에 의해 희생되었던 이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얻게 된 영광과 승리로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동안 차지하는데 희생된 사람들을 말입니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자들이 저지른 끝도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세요.
다른 쪽 구석에 있는 겉모습이 분간도 되지 않는 자들에게 저지른 잔학행위를 말입니다.
얼마나 작은 불화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 달려들었는지, 얼마나 열렬히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우리의 만용과 자만심, 우리가 우주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창백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의 행성은 암흑으로 뒤덮인 우주 속에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처럼 광활하게 칠흑같은 우주속에서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가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방문은 할 수 있겠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하죠, 좋든 싫든 현재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죠, 멀리서 찍힌 이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겁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우리가 서로를 좀 더 배려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칼 세이건(Carl Sagan)의 창백한 푸른 점에서 1994 -
이 글은 칼 세이건이 쓴 저서 “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라는 책에서 인용한 부분인데,
우주선 Voyager 1호에서 지구에서 60억 km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향하여 찍은 사진으로 정말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모습이 지구라는 것이다. 그곳에 우리 자신들이 살고 있고, 70억 이상의 인류가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지구가 얼마나 작은 球體인가를 알 수 있다. 태양계에서도 그리 크지 않은 덩어리인데, 우주에서는 완전히 파묻힐만한 존재이다. 이곳에 하나님이 빚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가히 놀랄만한 사건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이름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리고 역사가 바뀌고, 땅주인이 바뀌고, 나라가 망하고 새롭게 들어서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아직 1만년도 안되었는데, 이처럼 무수한 변화가 있고, 지구상에는 아직도 많은 스토리가 있다. 전쟁, 기근, 자연재해, 질병, 고통, 갈등, 패권싸움,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인간이 높아지기 위한 계획이 진행된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서 거의 모든 나라가 문을 닫고서 서로간에 왕래가 없이 지내고, 이제는 전쟁으로 세계가 모두 고통을 안고 산다. 에너지, 식량, 무기, 조금이라도 더 땅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패권을 쥐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고, 이런 가운데 죽고 사라지고, 역사는 변하게 된다.
그렇지만 마지막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가끔 생각해본다. 왜 지구에만 인간이 살게 되었나? 다른 행성에는 생명체가 전혀 없는가?
우리 은하수 갤럭시만 해도 별이 3천억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웃인 안드로메다 갤럭시에는 별이 1조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별들에 따르는 행성이 또 있을텐데, 그곳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직 모르니까, 정보도 없고, 깜깜무소식, 다른 곳의 상황을 알지 못하니, 확실하게 답은 할 수 없지만, 우주를 통치하는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천국에 가게 되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것만이 아닌 우주는 소우주, 대우주, 그리고 은하가 모여있는 은하단이 있고, 너무 광활해서 도저히 상상이상이로다. 상상을 뛰어넘는 광대한 우주인데, 우리는 지구상에서 높아지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권세를 잡기 위해, 힘을 갖기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온 열정을 다해서 인생을 불태우면서 그것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고, 투자하고, 모든 것을 걸고서 얻고자 하지만, 그것을 얻은 즉시, 또다시 더 나은 것이 나타나고, 평생 노력해도 다 얻지 못한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 : 10) 모세가 고백한 기도중에 나온 구절이다.
인생이 아무리 해봐도 100세를 넘지 못하니, 이 짧은 기간중에 무엇을 얻었다 할 것이 있으리요? 후회와 슬픔, 그리고 아픈 기억밖에는 없다.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정점일 뿐이다.
지구도 한점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인생도 긴 시간의 한 점에 불과한 순간일 뿐이다.
무엇을 추구하는가? 무엇에 투자해야 하겠나?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 : 15)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의 기반이로다.
다른 길이 없나니, 아무리 생명의 길을 찾아봐도 다른 길은 없도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엄청나게 쌓아두고 오래도록 살고자 하지만, 순식간에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그리고 죽음이 다가온다. 그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는가?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 2 : 26)
밥상을 차리는 자가 있고, 밥상을 받아서 먹는 자가 있고, 설거지 하는 자가 있고, 누리는 자가 있다. 운명이라고 하면 갖가지 운명의 변화가 있지만, 평생 일하고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는 자도 있고, 갑자기 대박에 터져 행운의 선물을 갖게 되는 자도 있다. 누가 제대로 살았다고 하겠는가? 모든 변수(variable)들을 다 집어넣어도 풀어지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인간에게는 많은 약점과 허점과 문제성이 있고, 아무리 해봐도 자기 마음먹은대로 되어가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만이 온전하게 이루어져갈 뿐이다.
오늘 일이 제대로 잘 풀어지지 않았는가? 오늘 계획한 것이 실패했는가? 거의 사망선고를 당할 정도로 망해버렸는가? 그럴찌라도 삶을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